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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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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차 :   1994년 9월 28-29일까지 오산리 기도 원에서(조 용기 목사)에서 성신클럽 연합 부흥 성회를  인도하였습니다.  

      1994년 9월 29일  오전 연합 성회가 끝나고 기도원을 두루 보이시며 소개 하시던 목사님이  이젠 한국 기도의 불길이 식어 갑니다. 그 이유는 한월산 기도원의 이 천석 목사님과 오산리 기도원 최 자실 목사님이  누가 무어라 해도 두 분은 한국의 기도 용사들 입니다. 지금은 그  두 분이 다 돌아 가셨습니다. 그 후에 한국에 있는 성신 클럽   총무님께서 저에게 한국  올 것을 3개월 전에 이야기를 하시면 포스터와 일 개월 동안 부흥 사경회를  할 수 있 도록  하겠다고 말하였으나 저는 그 때 한국 교계가 너무도 거품이 많다는 것을 알고 그 후로는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관계를 끝어 버렸습니다.

  

31 차 :  1994년 10월 2일-5일까지 오산 침례교회에서(이 진선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오산 침례교회는 6,25때 참전하였던 미군 병사 한명이 수원과 오산 경계 산에서  전사하였습니다. 전사한 병사의 부모님들이 아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32 차 : 1994년 11월 3일-6일까지 리버사이드 침례교회에서(남 용순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다.

      첫 날 첫 시간에 저녁에 예배후에 페로쉽을 하지 말고  내일 새벽에 많이 참석 하시기 바랍니다.하였더니 담임 목사님께서 여전도회 회장님께 페로쉽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0년 동안 부흥   사경회를 다니며 말하였으나  펠로쉽을 하지 않는 교회는 두 교회로 두 교회에 많은 기적이 일어 났습니다.   새벽 기도회에 지금까지가장 많이 참석한 사람이 50여명 참석하셨다고 하지만 제가 새벽 기도 인도할   때에는 150명 정도가  참석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는 동안에 아기를 낳고 산후 조리를 잘 못하여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던 여자분이  금요일 부흥 사경회 후에 안수기도를   받고 토요일 자기 힘으로 일었으며 병이 낳은 후에 교회에 등록   하였다고 하며  마지막 날 저녁에 설교   하려고 강대상에  올라갈 때에 담임 목사님께서 종이에 아픈  사람을 위하여 기도 부터 하자고 하여 종이에   쓰여진 여자 집사님께 어떻게 아프냐고 물었을 때 한국에  있는  남 동생이 36살인데 병원에 가도 알수 없는  병으로 지금 다 죽어 간다는 것이 었습니다. 미국 엘에이에서   누님 되시는 43살  먹은 집사님이 대신 기도를 받고   한국의 동생이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33 차 : 1994년 12월 8일-11일까지 데이토나 비치침례교회에서(박 요한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데이토나 비취에 차가 다닐 수 있다고 합니다. 박 목사님 방에서 조선의 처음 우표  1895년 인쇄된 것을 3장을 보았습니다. 데이토나에  가기 전에 한국 일보에  1890년된  조선 의 처음  우표를    네데란드 사람이 2장을 가지고 있는데 한장에 값이  500만원 이상 이라는 신문을 보았습니다. 


34 차 :   1995년 2월 23일-26일까지 콩고드 침례교회에서(길 영환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다. 

       샌프란시스꼬 부근 콩고드 침례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첫 날부터 저의 설교에 특별하게 듣는 분이 있었습니다. 성가대의 찬양을  강대상 위에서 하고 내려 와서  맨 앞줄에 앉아 있는 여자분 중에 얼굴이   둥근 편인 사람이 첫째 날에도 또 그 다음 날에도 설교를 듣는 자세가 남 다르게 듣고 있어서 예배가 끝   나고 길 목사님께  성가대 소프라노를 부르는 사람이 앞 줄 세번째 앉아 있는 얼굴 둥근 여자분이 너무   진지하게  듣더라고  하였더니 김 영환 목사님이 그 사람이 저의 아내 입니다. 하셨다. 제 아내가 장모님이신 아내의 어머니가 리버사이드  침례교회 남 용순 목사님 사모입니다. 장모님이 신 목사님이 너무도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므로 부흥회가 우리 교회의 계획이 있다고 하였으나 한 해가 가기 전에 꼭 하라는   부탁을 받아 그래서  열심히 듣는 모양이라고 하셨다.  거기서 전에 달라스 우리 교회의 교인이었던  김 동성씨부부을 만났다.

 

35 차 : 1995년 3월 31일-4얼2일까지 산안토니아 한 마음 교회에서(이 세영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이 세영 목사님은  달라스 세계 선교교회에서  전도사로 봉사하였으며 달라스 선교 침례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산안토니아 한 마음 침례교회의 담임 하시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미국 교회를  빌려서 사용하였으나 3년 후에 교회을  건축하여 지금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 건축할 때에는  한쪽이라 집들이 없어으나 지금은  바로 앞에 사핑센터가 생기고 돈을 가진 부자들이 새 집을 지어 그리로 옮겨옴으로  한 마음 교회의 터 값이 많이 올라 갔습니다. 산 안토니아에서 처음으로 매일 새벽 기도를 시작하므로  신령한 목사님으로 통하게 되었습니다. 달라스 신학교를 다니며  우리 교회 부근에 아파트를 사용하고 있으나 새벽 기도회에 참석 하지를 아니하여  어느날 왜 새벽 기도회에 참석 하지 않느냐고  제가 물었을 때에 그의 대답이 아침 체질이 되어 늦게 일어 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새벽 기도회에  참석을 못할 전도사님은 우리 교회에 필요 없음로  이제부터 우리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 날 부터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여  신학교에 갈 때까지 보통 2시간 정도 기도하여 졸업 하기전부터 산안토니아  한 마음 교회의 담임이 되셨습니다.

   

36 차 : 1995년 4월20일-23일까지 멜본 중앙 침례교회에서(김 광남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4월 22일 저녁 설교를 마치고 어떠한 여자분이 나보고 아버지라고 하면서 자기의 부모님을 나에게   소개를 하였습니다. 저는 매우 어리 둥절하였습니다. 그랬더너 자기는  1987년 3월 에브린 이 명규  목사님 교회에서 부흥 사경회를 할 때에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여 저를 영적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37 차 : 1995년 7월 6일-9일까지 킬린 벧엘 침례교회에서(김 성한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텍사스 킬린에서 목회하시는 김 성한 목사님은 프로리다 템파에서 사업을 하셨던 분이며 와싱톤 침례신학교를 졸업하시고 킬린 베엘 침례교회를 하여 자체 교회까지 가지고 있으며 교인 수는 200명이 넘었습니다.  대부분 국제결혼하신 분들이며 열심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38 차 : 1995년 10월 6일-10일까지 싸우스 다코다 침례교회에서(이 용구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이 용구 목사님은  가나다 에드몬트에  2000년 7월에 그 교회의 부흥 사경회를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오셔서 신학를 마져 하시고 싸우스 타코다  침례교회의 담임목사님으로서 시무 하셨습니다. 

      부흥 사경회가 결정이 되어 비행기 표를 예약할 때  이 용구 목사님께서 월요일 하루는 싸우스    다코다에서 하루를 쉬었다가 가도록 비행기 시간을 예약을 하라고 하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이 용구   목사님이 어디 구경할 곳이 있다며 가자고하여 가서 보니 루섬모여(Rusum Moor) 미국 대통령   4사람의  얼굴을 바위에 조각하여 둔 곳이었습니다. 1973년 제가 처음 미국에 이민을 갔을 때   우표가 4 사람의 대통령 얼굴을 바위에 조각하여 둔 것을 보고 고등 학교 당시 큰 바위 얼굴이라는   생각 났으며 꼭 한 번 가보았으면 하던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부흥 사경회만 하는 줄 알았으나   마음에 그리워 하던 바위의 얼굴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 곳에서 부흥 성회를 하는 동안에  있었던 일로 한국에서 연세 대학교 광산과를  졸업하고 제가 간 그 곳에 불렛 골드 (Black Gold) 광산이 있어 그곳에서 공부하기 위하여 왔다는 젊은 사람이 집안 누님의 소개로 이화 여대 졸업을 하고   보스톤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아가씨와 사귀면서 남자의 아버지가 1년 전에 미국에 오셨을 때에   동성 동본의 여자와 사귀고 결혼하여도 되느 냐고 물었을 때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7개월 후에   동성 동본은 안된다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남자가 이야기 하기를 괜찮다고 아버지가 말하여 그 후에  정이 들었는데 이제 와서 안된다니 나는 어떻게하여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몇년 후에 10촌이    넘으면 동성 동본이라도 결혼할 수 있다는 법이 한국에서 정해졌으나 그때는 안되는 때이였습니다.

  

39 차 : 1995년 11월2일-6일까지 마리에티 침례교회에서(이 강호 목사)부흥 사경회 인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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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교 사역 보고(한인 교회 구원의 복음 세미나) 신인훈 2010.08.26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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