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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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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차 : 1987년 1월 25일 달라스 벨엘 한인 침례교회(최 은종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4차 : 1987년 3월 5일-8일까지 포트 워스  한인 침례교회에서(도 상국 전도사)  부흥 사경회 인도 하였습니다.       

5차 : 1987년 3월 26일-27일 텍사스 에브린 한인 교회(이 명규 목사) 부흥 사경회 인도 하였습니다.

         저녁 8시에 시작하여 8시 30분이면 미국 교회를 사용 하므로 문 단속하는 사람이  와서 전기 불을  끄고   문을 닿으므로 집사님 집에가서 계속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그 때에 구원받은 사람이   1995년 프로리다   멜본에서   부흥 사경회를 하는 장소에서 다시 만나 저를 보고 영의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또 한가지 더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에브린 교회에서 성회가   끝난 후에 간증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여자분은  아이가 3명이며 미군 공군 부대에  근무하는  미국  남자가  자기의  남편이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술을 좋아 하여 월급은 집에  가져 오는 경우가 없으며  돈이  없으면 집에 와서 라디오, TV, 녹음기 같은 것을 가져 가서 술을 마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렇게 못하게  하여도  계속 그렇게 하므로  이혼을 하고  집에서 쫓아 내었다고 합니다.  남편이였던 사람은 술 때문에 공군에서 불 명예 제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아침에 일어나 보면 자기 집  앞에서  엎드려 자고  있드라는  것 입니다. 매일 그렇게 하므로 아이들   보기에 미안하여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못랐는데 이 번  성회로 은혜받고 남편을 다시 집으로 모시 겠다고   하였습니다.

 

6차 : 1987년 4월 30일-5월 3일 까지 산안 토니아 한인 침례교회(황 영호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황영호 목사님은 6.25사변때에 인민군으로  경북  포항에까지 내려 왔다가 인민군이 후퇴를 할 때 미군들에게 붙잡혀 거제도 수용소에 있다가 포로 석방되어 이북으로 가지 아니하고 남쪽 남아 신학교를  하고 목사가 되신 분이 었습니다.


7차 : 1987년 5월 28일-31일까지 엘파소 한인 침례교회(노 영철 목사) 부흥 사경회 인도 하였습니다.  

        월요일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파킹장에 나오는데 어떠한 부인이 나에게 와서 봉투를 하나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어제 저녁에 은혜받아 집에 돌아 가서  강사님에게 전해 주어야 하겠다고  마음 먹고 준비하여 왔으나 오늘 새벽 예배드리는 동안에 이 시간만 지나면 강사님은 엘파소를 떠나실 것이다. 하고 그 돈을 가방 안에 넣어서  예배가 끝나고 나와서 차의 시동이 걸때 걸리지 않아 강사님께  이 돈을  드리면 시동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돈 봉투를 주는 것입니다. 저는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자동차 정비사에게 가야지요 하였더니,   그냥 봉투를 저에게 주고 차의 시동을 거니 걸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8차 : 1988년 9월9일-11일까지 가나다 칼가리 한인 침례교회( 윤 지원 목사) 에서 수양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이 때는 한국에 계시는 저의 아버지가 돌아 가셨으나 부흥회와 한국의 올림픽 관계로 비행기의 좌석이 없어서 한국에 가지 못했다. 첫날 저녁 성회가   끝나고  어떤 여자분이 자기가 여성선교회 회장이라며 두터운 새타를 저에게 주면서 내일 새벽에 눈이 오므로 입으십  시기 바랍니다. 목사님께서 미국 남쪽에서 오시므로 옷을 여름 옷을 입고 오실 것이므로 새타를 준비하라고 하여 준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 정말로 눈이 하야케 내렸습니다,  윤 지원   목사님은   당뇨병 세계 적인 예방 의학자 이지만 길가다가 차에 가스를 보충하려 시골에 들어 갔다가 나오는 길을   못 찾아 해매는 것을 보았습니다.  윤 지원 목사님은 세계 당뇨학회에서 메인 스프커로 11번 말씀을 전했다고  하였습니다.


9차 : 1989년 9월 22일-24일까지 가나다 칼가리 한인 침례교회(윤 지원 목사)에서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부흥회 하는 그 교회에서 있었던 일로서 어떠한 사람이 자기는 전도사의 아들이라면서  그때에 활동하는 한국의 대중 음악 가수들은 대부분 자기 손을 거쳐서 세워 졌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부터 한국의 방송국의 성우 이 창환씨 부인이  저의 설교를 너무 좋아 하셨습니다. 이 창환씨는 한국의 유명한 방송국의 성우로서 유신 때에 중앙 정부에서 유신 지지 하여 줄것을 강요하여 한국의 성우 생활을  그만 두고 가나다 칼가리에 와서 햄버그  장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윤 지원 목사님이 몇 번이 가서 전도를 하였으나 한국 사람의 모임에 나타 나는 것을 싫어 하여 교회에 나오지를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 창환씨가 암이 걸려 죽게 되어 예수님을 믿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얼마 후에 이 창환씨  장례를 지내는 날 구름이 없는  맑은 날이지만 장례 지내는 그곳에 무지계가 셨다고 합니다.그것을 본 큰 아들이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하고 지금은 미국의 싸우 웨스턴 신학교 교수로 수고 하고 있습니다.

 

10차 : 1990년 3월 22일-25일까지 루지아나 슈리포트 한인 교회(김 성문 목사)에서 부흥 사경회가 있었습니다.

       김 성문 목사님은 성결 교회의 목사님으로  부흥 사경회 동안에  장로님 안수식이 있었으며 마치고 돌아 오기전 그 교회의 한  여자 성도님이 자기 부모님이 예수님을 믿게하여 달라고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시지 아니하면 자기를 데려 가달라고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얼마 후에 아버지께서 몸이 아파서 부산의 여러 병원에 다녀 보았으나 병 명을 찾지 못하였을 때에 어떠한 한 분이 말하기를 병원에서 병 명을 못 찾으면 마산에 있는  어느 기도원에 가보라고 하여 기도원에서  일 주일 후에 아픈 병을 고침을 받았으며 그것을 본  어머니는 남편의  병을 고쳐 주시는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여 이제는 부모님께서 다 믿기로 하였다고 하는 전화를 한 4개월 후에 저에 연락 하였습니다. 


11차 : 1990년 9월 2일 오후 3시  달라스 동산 교회(배 재창 목사) 에서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배 목사님은 처음 달라스에 왔을 때에는  한국에서 고려파 장로교회의 신학을 하였다고 합니다. 미국오게돈 동기는  처가 집 부모님들이(장인, 장모) 미국에 살면서 초청하셨고  그 부모님들이 한국에서는 장로교회를 다니 셨으나 미국에 오셔서 침례교를 다니므로  배 목사님도 미국에 오셔서 침례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들려 오는 말에 침례교회의 목사들은 성경을 모르는 엉터리 목사들이라고 하며 자기는 한국이 알아 주는 고려파 신학교를 졸업하였다고 자랑 하면서 침례교 목사님들을 우습께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한 2년후에 침례교 목사 시취를 1986년도에 한다고 말하면서 그 당시 침례교회의 저도 시취 위원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시추할 때에 제가 성경을 많이 질문하였습니다. 배 전도사님은 나중에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목사가 되려고 합니까?  하고  말을 했습니다. 배 전도사님의 대답이 성경을 모른다고 목사 안수를 하여 주지 아니하면 전도사로서 목회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12차 : 1991년 1월 11일-13일까지 델라웨어 한인 침례교회(오 요한 목사) 에서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이 때에 월요일 점심 식사를 대접하는 사람께서 "나는 하나님께 저주 받은 목사 입니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 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에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는 중학교 다닐 때에 경북 웅변 대회에서 일등을 하였으며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니며 고등학교 전국 웅변 대회에서 일등을 하였으며 육군 사관 학교에 공부 하면서 전군의 웅변대회에서 일등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육군 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사단에서  경리 대위로 강원도에서 일을 할 때에 연대장님이 찾아 오셔서 말하기를 사단장님께서 돈이 필요하다고 하시므로 먼저  돈을 달라고 하여 돈을 얼마를 주었다고 합니다.  얼마 후에 그 연대장님이 다시 와서 빨리 부대를 떠나 다른 곳에 숨어 있으되 있는 주소를 가르쳐 달라고하였습니다. 서울에 와서 친구 집에 있으며 테레비를보니 자기 사단장님이 박 정희 정부에 반기를 들어 전복시키고 자기가 정권을 잡으려다가 발각이 되어 잡혀 갔으며 그때 돈을 댄 사람중에 자기 이름이 나오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온 신문에 자기 이름이  있어 3일간 고민을 하다가 자수했다고 하였습니다. 6개월간 형을 살고 나올 때 강등되어 제대를 하고 고향에 돌아와 할 일이 없어 낙씨를 하고 있을 때에 면장님이 찾아 오셔서  J선생님은 말을 잘하시므로 우리 면의 새 마을 운동보고 대회을 하였습니다. 보고 대회에 군에서 일등을 하고 경북도에서  일등을 하여 전국 대회에서 3등을 하여 청와대에 초청을  받아 저녁식사를 청와대에서 하면서 불과 얼마전에 박 정희 정부를 전복 시키려는 하던 사람에게 돈을 주었다는 사람이 청와대에서 식사를 하게 되니 이상 하드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아니하여 박 정희 대통령을 돌아 가시고 전 두환 장군이 등장하여  정권을 잡고 그 후에 대통령이 되어  국민 평화 통일 위원회가 생기고 자기는 경북 평화 통일 위원회 사무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전 두환 대통령과 육군 사관 학교 동기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에 보니 대학생들이 대모를 자꾸하므로 이 정권도 오래동안은 가지 못 하겠구나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하여 미국으로 이민을 갈가 알아 보니 목사가 되어 미국 가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을 알고 경북의 평화 통일 사무장을 사표를 내고 장로교의 어느 신학교에  공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학교에서 전 두환 대통령의 동기로 알고  신학교에서 무슨 일만 있으면 학생인 자기를 앞세워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하고  그 후에 그 장로교단의 총무가 되어 일을 하였습니다. 목사 안수나 현당 예배 때나 교단의 무슨일이 있을 때에 자기가 축사를 하던지 기도를 하던지 또는 성경을 읽는 경우가 이었다고합니다. 그때 강대상에 올라 서면 성경의 글이 보이지를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축사를 하게 될 때에 강단 상에 서면 말이 나오지 않아  교단 총회 총무를 사임하고 침과 한의를 배워 미국에 왔다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강단에서 기도를 못하며 성경의 글이 보이지를 아니 하나 내려 오면 성경의 글이 다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순수한 뜻으로 목사가 된 것이 아닌 잘 못된 마음으로  목사가 된 자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저를 보고 강대상에서 설교를 하는 것과 성경을 읽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 입니다. 하셨습니다.

   

13차 :  1991년 3월15일-17일 시애틀 안디옥 침례교회(심 영건 목사)에서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저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비행기 멀미를 하였습니다. 이 때에도  귀 밑에라는 것을 귀밑에 대고 시애틀에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기 위하여 갔습니다.  토요일 점심 식사를 하고 난 후에 어떤 여자 집사님이 왜 귀밑에 무엇을 붙여 놓았느냐고  물으시기에 저는 비행기를 타면 멀미를 하기 때문에 붙여 놓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집사님이 말하기를 귀 밑에 붙여놓은 반창고의  냄세가 코로 들어가면 질식을 하므로 때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때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이제부터 비행기 멀미 하지 않게하여 주옵소서 였습니다. 기도 한  후부터는 지금까지 귀밑에를 붙이지 않아도 비행기 멀미를 하지 않았습니다.   3월 18일 월요일 시애틀에 사는 이 장로님이 오전에 이 00 장로님댁에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 가정 예배를 권면 하였습니다. 이 00 장로님은 메릴랜드에 있을 저의 집부근에 함께 있었으며 저의 아내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달라스로 오기 전에 시애틀로 먼저 이사를 갔습니다. 이 00 장로님은 서울 대학에 가려고 준비하는 중에 아버지가 돌아 가셔서 대학을 가지못했으나 영어 단어를 일만 단어 정도는 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미국에 오시기 전에 그레이 하운드 한국공장에서 정비사로 일을 하였으며 시애틀가서  정비공장과 자동차 바디 공장을 하게 되여 돈을 많이 모으신 분이 었으며 시애틀 형제 교회에서 10년 전에 장로님이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부흥 사경회를 한 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집이 있어서 저녁 성회와 새벽 기도회에 계속 참석을 하셨으며 월요일에는 점심식사를 하고 이 장로님께서 공항에 저를 태워 주셨습니다. 이 장로님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미국의 레간 대통령의 취임식을 할 때 워싱톤 주의 고등학생 두명이 참석하게 되었을 큰 아들이 두명중 한 명으로 고등학생 주 대표로 참석하였습니다. 그 후에 대학원까지 마치고  이 장로님이  자동차 딜러를 인가 내어 자동차 딜러를 하게 되므로   큰 아들이 그 주의 시험을 처서 자동차 딜러의 메니저 자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지어 딜러를 하기 위하여 큰 아들에게 그 당시 일백만불($1,000,000) 을 주었더니 삼 개월만에 노름하여 다 읽어 버리고 도망같다는 것입니다. 이 장로님은 아들만 3 사람으로서 둘 째 아들은 고등하교 졸업도 못한 공부하기 싫어 하는 아들이며 낮 열두시쯤 집을 나가면 밤 1시나 2시경에 집아 돌아 오며 3째 아들은 그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집에 오면 방문을 닿아 놓고 음악을 좋아하여  드럼과 피아노와 다른 음악 장비를 구입하여 음악만 몰두 하며 부모님과는 전여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목사님 내가 미국에 와서 돈은 벌었지만 아들 세명이 이 모양이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그 때 제가 이 장로님이 교회의 장로가 되어 10년이 지나며 아이들과 몇 번을 가정 예배를 드렸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한번도 시간이 바뻐서 드리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장로가 되어 10년 동안 한번 도 아이들과 함께 가정 예배를 못 드리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든지 아이들의 잘 못이 아니라 장로님의 잘 못 입니다. 지금부터 가정 예배를 드리 십시요 하였더니 아이들은 아무도 참석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가정 예배를 드립니까?  장로님과 사모님 두 분이 아이들의 이름을 크게 쓰고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 제가 잘 못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정상적인 신앙생활과 가정생활을 하게 하여 달라고 매일 예배드리며 기도하시되 한 3년 정도  하시면 세 아들이 다 돌아 올 것입니다. 큰 아들이 돌아 오면꾸중을 하시지 말고 오히려 끄러안고 내가 너에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인도 하지 못하여 내가 잘 못했다고 하십시요 하고 기도하고 저는 떠나 왔습니다. 가정 예배를 드리고부터 3년 전에 큰 아들도 돌아 오고 둘째 아들은 고등학교 검정 고시 시험을 치고 대학을갔으며 세째 아들은 시애틀에 있는 대학에서 자동차과를 전공하여 아버지가 운영하던 정비 공장에 공장장이 되어 더 확장을 하여 너무 고마워 이 장로님은 나이 56세에 신학교를 들어가 59세에 신학교 졸업을 하고 안수를 받아 목사가 되어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하시다가 세 아들이  경제적인 도움으로 그 후에 태국에 선교사로 갔셨다고 하였습니다.         


14차 :  1991년 4월18일-21일까지  산안토니아 한인 남부  침례교회(이 종용 목사)에서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이 종용 목사님은 원래 유행가의 가수로서 한국의 대마초 사건 때에 형무소  생활을 몇 개월 동안 한 사람입니다.  형무소에 있면서 어린 시절 다녔던 교회가 생각이 나서 다시 교회 생활을 시작 하였다고 합니다.  이 종용 목사님께서 달라스 우리 교회에서 간증을 할 때 이야기가 가수로서  돈도 생기고 인기도 올라가니 교회 생활이나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이 다필요 없드라고 하였습니다. 한창 인기가 좋을 때는 구름타고 다는 것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마초  사건으로 형무소  생할을 할 때에 예수님을  떠난 것이 잘 못이라는 것을 알고  형이 끝나고 형무소에서 나왔으나 몇년 동안 가수 활동을 정부에서 못하게 하므로  그때부터 신앙생활을 열심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미국에 와서 신학교를 하고  목사 안수를 받아 산안 토니아  남부 교회를 개척하여 담임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산 토니아 남부 교회는  특별히 외국의 군인들이  미국에 군사 훈련을 받기 위하여  미국에 오면  먼저 언어 교육부터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전문 군사 훈련을 받은 부대로 가게 됩니다.  미국에 군사 교육을 받으려 오는 모든 외국군인을 위한 언어 교육을 위하여 오시는  군인들을 위하여 군대 언어 교육을 받는 부대 부근에 한국에서 오시는 한국 군인들을 위하여 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부흥 사경회를 갔을 때 온 편지을  저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산안토니아에 교육 받으러 오신 분이 이 목사님의 전도로 믿게된 되어 미국에서 훈련이 끝나고 돌아 가서  강원도에  있는 어느 부대의 대대장으로서  이 목사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 입니다.  부흥 사경회 때에 많은 아픈 사람에게 안수를 하였으며 달라스로 돌아 올 때에도   공항에서도   안수 받아 고침 받았습니다.

     

15차 : 1991년 5월 23일-30일까지 오스틴 한인 침례교회에서(김 정주 목사) 부흥 사경회를 1주일   동안 인도 하였습니다.

            오스틴 공항에 내릴 때에 김 정주 목사님이 차를 가지고 태우려 왔습니다. 차가   출발할 때에 저에게 말씀 하시기를 이번에 부흥 사경회에 참석 하는 사람이 아마 130명 정도 됩니다.  참석하는 사람들의 93%가 서울대, 연세대, 고대, 이화 여대 졸업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알기는   빨리 알지만  마음에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이번 성회에  성도들이 변화 받기 원 합니다. 저는 첫 시간에 열앙기하 4장 3절을 인용하여 이 번 성회는 질 그릇이라도 많이 준비 하는 대로 다 차게 될 것입니다.   첫 날 그당시 보사부 차관의 따님의 손 목 아프던 것이 치료함을 받았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서울대 졸업를  하고 미국에 공부하려 온 장로님의 아들이  박사 논문을 쓰던분의 아내가 임신 중절로 병원에 입원하여 고생 하였습니다. 여러 성도님들이 같이 가서 기도하는 중에 이 병은 남편이 주일에 장로님의 아들로서 예배에 참석 하지 않고 논문을 쓰는 것이 잘 못이며  예배 참석만 하여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면 고침 받게 된다고 말하고  기도 한 후에 고침 받았습니다. 첫 날 저녁에 펠로쉽을  하지 말고 내일 새벽에 많이  참석하기를 바랍니다.   하였더니 펠로 쉽을 하지 않고 새벽 기도회에 지금까지  최고 15명 정도 였다는  새벽 기도회에 50명 이상이 나왔으며 25일 주일 낮 예배 후에는 김 목사님이 목요일까지 연장 합니다.    저에게 물어 보지도 않고  일방 적으로  선포 하였습니다.   26일부터는  새벽 기도회후에 목사님 댁에서 오전 중에  간증   집회가 시작 되었습니다.  1992년과  1994년에 다시 부흥 성회를 어스틴 침례교회에서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16차 :  1991년 7월5일-7일까지 가나다 칼가리 한인 침례교회에서(윤 지원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가나다 서부  칼가리 한인 침례 교회는 부흥 사경회를 3번 이나 하였습니다. 


17차 : 1991년 7월10일-14일까지 가나다 에드몬트 한인 침례교회(김 정일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이 때는 윤 지원 목사님께서 아내와 저의  비행기 요금을 칼가리 교회에서 지불하고 에드몬트 교회에서는 록키 산맥의 아름다운 경치를 관광을 책임 지기로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월요일 오전부터 산 구경를 하고 수요일 오후에 예배드리려 간다면서 에드몬트를 향하여 가서 수요예배 15분 전에 교회에 도착하여 저 보고  설교 부탁하여 제가 그러면 설교 후에 내일 아침 새벽부터 성회를 시작 합니다. 하여도  되느 냐고 물으니 김 목사님의 대답이 저야 좋지요 하여 에드모느트 부흥 성회는  수요일 저녁부터 주일  밤까지 하였으며 토요일에는 낮에 7시간 동안 세미나를 하였습니다. 부흥 사경회를 하기 전 처음 김 정일 목사님께서 전화를 하였을 때  제가 목요일부터 부흥 사경회를 하자고 하였으나 그 교회가 창립된 이후 목요일부터 부흥 성회를 한 적이 없으므로 안된다던 교회가 부흥 사경회 5일과 낮 7시간을 하였습니다.

 

18차 : 1991년 9월 20일-23일까지 텍사스 애엠(A&M) 선교 교회에서(김 종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토요일 부흥 성회가 끝나고 시간이 아마 저녁 10시 반은 되었을 것입니다.  부흥 성회에 참석 하셨던 성도들  모여 식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음식을 먹지를 아니하였습니다. 저는 위장이 좋지 못하여 저녁식후에는 아무 것도 먹지를 아니하였습니다.  그때 저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분이  저에게 목사가 되기 전에 식품영양과를  공부하였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니요  하였더니 그분의 이야기가  저녁 9시 지나서 무엇을 먹으면 독약을 먹는 것과 같다는 말을 식품영양학을 하는 사람들은 말을 한며 배가 나온 사람들은 거의 다가 대부분 저녁 9시 넘어서 무엇을 먹는 사람들이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니 자기는 텍사스A M대학의 영양학 교수라고 말하였습니다. 


19차 : 1992년 2월7일-9일까지  스틸 워터 한인 교회에서(이 천우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2016년 6월 21일부터 -23일까지  타코마 제일 침교회에서 미국 남침례회 한인 침례교회 총회가 있었습니다. 총회에 잘 참석 하지 아니하시던  이 천우 목사님이 이번 총회에 참석 하셨습니다. 그분의 이야기가 1992년  2월에 제가 미국 오크라호마 주의 스틸 워터 한인 교히에서 부흥 사경회를 하였습니다.  부흥 사경화 후에 5-6 사람(?)이 학교 공부를 그만 두고 (심지어 박사 공부가지 하시던 분들이) 신학교 공부를  하여 목사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20차 : 1992년 4월 3일-5일까지 아리조나 투산 한인 침례교회(조 성식 목사)에서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레서스라는  차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토요일 점심을 같이 하게된 집사님은  투산의 세탁소의   실권을 장악 하고 있다고하며 그의 사무실에서 기도하였습니다.

 

21차 : 1992년 9월17-20일까지 메릴랜드 로럴 한인 침례교회(도 상국 목사)에서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오래동안 화회 하지 못했던 남 성호 장로님께서 찾아 오셔서 17년 전에 잘 못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22차 : 1992년 10월 8-11일까지 산호세 한인 선교 침례교회(강 밝내 목사)에서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샌프란시스꼬  차이나 타운 상점을 구경하였으며 전에 우리 교회 성도 였던 전 미옥 자매님  집에서 지나게 되었습니다.

 

23차 : 1992년 10월 22-25일 뉴욕 능력 장로 교회(김 천표 목사)에서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목 진후 장로님의 가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24차 :1992년 11월 13일-15일 워치타폴  침례교회(박 성호 목사)에서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내가 초청받아 잠자던 집의 할머니가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의식이 없었습니다. 새벽 기도회에 가기 위하여 저를 태우려 왔던 박 성호 목사님께 이야기를 하였더너 박 성호 목사님께서 병원 은급실에 가서 할머님의 자녀들에게 전화를 하여  연락을 하였습니다. 


25차 :  1993년 2월11일-14일까지 켈리포니아 몬테리  침례교회(서 정낙 목사)에서 부흥 사경회 인도하습니다.

           성가대 지휘하시는 분이 헌금 시간에 바이올린으로 특송을 매일 하셨습니다. 아주 잘하는 것 같아  목사님께    물어 보았습니다. 서 목사님 대답이 이화 여대 교수로서 6개월은 미주에서 활동하며 정 경화씨는  연주로  하지만 음악 이론은  이분이 한국에서 제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집에는  보기에 비숫한 바이올린을  3개둔다고 하였으며  특송을 할  때 피아노 반주는 남편이 하고 끝나면 반드시 남편이 연주 하던 바이올린을 보관하였습니다.  제가 성회 인도하는 동안에 사주 팔자 점은 에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주일 저녁에 성회가 끝나고  나에게   어떠한 사람이 성명철학도 맞지 않는냐고 물었다. 맞지 않는다고 대답을 하였더니  자기는 서울 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내무부 3급(군수급)으로 있다가 간호원과 결혼하여 미국에 왔으며 자기 이름은 서울  종로에서  4번이나 바꾸어다고 하며 자기의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아 또 종로 성명철학원에 갔더니  이혼하면 앞길이 열린다고 하여  돌아와서 이유 없이 이혼하자고 하여 부인이 정신 병원 입원하였다가 성명철학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다는 말을 듣고 가서 부인에게 성명철학은 믿는 자에게  맞지 않는 말을 하므로 고침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26차 : 1993년 11월 18일-21일까지 버지니아 시온성 침례교회(고 원실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주일 낮 예배후에 어떤 여자 집사님이 잠시 면담하자고 하여  잠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자기 남편은 펜타곤으에서 정보 장교로서 대령으로 일하고 있으며 자기는  집을 계조하여 아이들을 보는 베비싯트를  하는 사람으로서  얼마전부터  좀더 크게 하기 위하여 베비시트할 장소를 찾던 중에 있으며 몇 곳은  될것 같이면서도 안되고  하였습니다.  그날 낮 설교를 다윗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금 10만 달란트를(10톤 추력으로 340 추력) 드리고(대상22:14)  자기의 사유 금도 삼천 달란트(10톤 추력 10대분)   드렸더니(대상29:4) 하나님께서 그 아들 솔로몬에게 더 큰 복을 주었으며 솔로몬은 자기 아들 르호보암에게 다 물려 주었으나 르호보암 왕 5년만에 애굽 왕 시삭이 다 빼았아 갔다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자기가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27만불($270,000) 이라면서 그것을 다 건축헌금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27차 : 1993년 12월 3일-5일까지 오크라호마 털사 제일 침례교회(서 정구 목사)에서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서 정구 목사님이 새벽 기도를 가다가 호랑이를 차에 치게 하였다고 합니다.


28차 : 1994년 5월 26일-29일까지 싸이프러스 침례교회(김 희상 목사)에서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김 희상 목사님은 제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미쉬간 레신에 있는 미쉬간 대학교 부근의 교회에 담임 목사로 갔습니다. 김 희상 목사님은 그 대학 촌의 교회에 소개를 하신 분은 버지니아 리치버크에 있는 리버티 대학의 김 창엽 목사님께서 추천 하셨습니다.  추천을 받은 김희 상 목사님은 대학촌에 목사로 가기를 싫어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찾아와서 하는 말이 그 대학교 부근에 있는 그 교회에는 가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유를  물어보니 대학생을 상대로 목회 하고 싶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당시 찬송가 355장(통합) " 부름받아 나선 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그와 같은 찬송을 부르면서 어디는 가고 어디는 못가겠다는 것은 목회자의 자세가 아닌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시16:6)  김 희상 목사님은  2주간 기도한 후에 저를 찾아 와서 가겠다고 하여  그곳에 갔습니다.  


29차 : 1994년 7월29일-31일까지 샌프란시스꼬 제일침례 교회(윤 영준 목사)에서 여름 수양회를  인도하였습니다.

           31일 마지막 설교가 끝날 무렵 아이가 물에 빠저 의식 없다는 말을 듣고   윤 목사님과 저는 헬리코터에 아이을 싫기 전에 간절히 기도하고  설교를 마치고  병원에   갔더니 아이가 완치되어 뛰어 놀고 있어 아이의  아빠가 식사대를 주어 윤 목사님과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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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교 사역 보고(한인 교회 구원의 복음 세미나) 신인훈 2010.08.26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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