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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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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1999년 5월 20일-23일까지 온누리 교회에서(김 성한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1995년 7월 6-9일까지  미국 텍사스 주 킬린 베엘 교회에서 부흥 사경회를 할 때에 김 성한 목사님은 담임 목사님이 었습니다. 킬린에는 누님이 계셔서 킬린에  와서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목회를 잘하여 몇 년이 못되어 자체 교회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의 대부분이 국제 결혼한 사람이 었습니다.  그 때 김 성한 목사님은  당뇨 병으로  3개월간  휴무 하면서 잠시 킬린을 떠나 있었습니다. 돌아오니 이상한 소문이 킬린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휴무 하시기 전에 국제 결혼 하였다가  이혼 한  4명의 여자들이 킬린 지역  침례교회 목사님들의 모임에 오셔서  김 성환 목사님과  새벽 기도 후에 목사님 사무실에서 성 관게를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부터 킬린에 더 이상 있지 못하여 떠나겠다고 달라스에 있는 저에게까지 전화를 하였습니다.  킬린을 떠나면 다시는 목회를 하지 아니하겠습니까 ?하고  물어보니 LA에서  목회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김 목사님 정말로 그런 일이 없었습니까? 하고 물어 보니 김 목사님은 그런일이 정말로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일이 없는데 지금 떠나면 사실로 인정되므로 떠나 시더라도 그 문제가 해결된 후에 떠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김 목사님은 킬린을 떠나지 아니하고 다시 교회를 개척하여 이름을 온누리 교회라고 하면서 저 보고 부흥 사경회를 부탁하셨습니다. 초청을 받아 가서 보니  여성도들은 대부분이 고등학교 이상의 졸업생이며 남자들이 벨엘 교회를 할 때에는 거의 없었으나  여기는 남자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남자는 감리교회의 장로로서 킬린에 오래 살았으며 김 성한 목사님이 여자 관계가 있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므로 자기는 김 목사님 목회를 도우려왔다고 하였습니다.  또  한 사람은  최 집사라는 남자로서 킬린에서 청소 사업을 하는 사람이며 달라스 제일 침례교회의  최 안수 집사님의 동생으로서  김 성한 목사님이 여자  관계가있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저에가 말하였습니다. 저는 김목사님 여자관계가있다는 말이 있는 온누리 교회에서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여 주었다는 비난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 후에 김 목사님을 가장 많이 비난하였던 킬린 침례교회의 K목사님이 일 년이 못되어 돌아 가셔으며 벨엘 교회에서 찬양을 인도하시던 미 육군 소령으로 치과 의사로서 수고 하시는 젊은 집사님이 김 성한 목사님이 여자가 관계가  사실이라며 비난 하던 사람이  일 년 못 되어  죽었습니다. 김 목사님을 가장 많이 비난 하던 두 사람이 갑자기 1년 안에 죽은 것을 무엇이라고  말하여야 하겠습니까?  

              

62. 1999년 9월 9일-12일까지 알칸사 제일 침례교회에서(이 정삼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미국 알칸사에있는  제일 침례교회에서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게 된 이유는  1996년  3월 노스케로니아에서  뱁티스트 뉴스에서(유 진대 목사) 저에게 강의를 부탁 하여 강의를 하는 동안 거기서 이 정삼 목사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정삼 목사님은 한국 포항 부근에서 목회를 하시고  미국에 오셨습니다. 미국에 오시게 된 것은 처제가  국제 결혼하여 이 목사님의 부인인 언니를 초청하므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이 정삼 목사님은  알칸사 핫스링  가까운 곳에 미국 사람이 가졌던 땅을 선물로 주기에 받아서 가지게 되어 거기에 기도원을 짓게 되었습니다. 핫스링 기도원 집은 거의가 이 정삼 목사님 손수 지은 것이 었습니다. 몇 년 간  기도원을 운영하는동안에 그만 사모님이  돌아 가셨습니다. 그때 알칸소 대학에 공부하면서 교회에서 반주 하던 아가씨가 이 목사님에게 자기의 몇촌 언니가 뉴욕 한국 유엔 대사님의  집에 요리사로 계시는데 한번 선을 보고 결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아내가 죽고 이(2주일) 주일 만에 뉴욕에가서  한국 유엔대사의 집에서 요리사로 일을 하는 여자를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는 40이 넘은 사람으로 한국에서 요리에 관한 모든 자격증을 다 취득하여  가졌으나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므로 만약 결혼을 하면 예수님을 믿겠다는 허락을 받고  이 주만에(Two  Weeks) 뉴욕에서 그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알칸사에 돌아 오니 언니가 죽은지 한 달만에(One Month) 결혼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처제와 많은 다툼이 있었다고합니다. 전 처는 여름 방학 동안에 어느 교회에서  200명 이상이 기도원에 오면  식사를 준비를 어떻게 얼마를 할 지 잘 못랐다고  합니다.  한 여름에도 몇 차례 그와 같은  일을 치루면서 남자로서 기도원 원장인  자기도 상당히 힘이 들었으나 새로운 여자는  한 번에 200명 혹은 300명 이상이 와도 식사를 준비를 잘한다는것입니다. 무슨 요리이든지 다 잘 준비를 하여 이정삼 목사님은 요리에서 해방이 되었다고하였습니다.  매일 아침 마다 예배를 두 부부가 드리므로 얼마 지난 후에 부인은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63. 1999년 10월 8일-10일까지 에반스빌 침례교회에서(조 만형 목사) 부흥 사경회 인도하였습니다.

           조  만형 목사님은  3년 전에 노스 케로라이나 와 테네시주의 가운데 있는 스모키 마운트가 있는 침례교 수양관에서 처음 만나 뵈옵게 되었습니다. 화요일 세미나가 끝이 나고 저녁에 저의 숙소에 찾아 오셔서 조 목사님께서 목회하는 교회의 사정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것을 두고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노스 케로라이나 어느 군부대가 있는 곳으로  국제 결혼한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자기가 처음 목회 하는 곳이며 자기는 공군 사관학교를 졸업을 하고 공군 장교로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신학교를 60세가 다되어 졸업을 하고 목회를 시작하였으며 한국의 유명한 K목사님의 조카 사위로서 공군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을 하려고할 무렵 자기 부인이(K목사님의 질녀) 여름 방학이 되어 아이들과 미국에 와서 미국에 살겠다고 하므로 별자리를 달지 못하고 군 생활을 그만 두고 미국에 왔으며 처남 두 사람이 목사며 장인도(김 00) 한국 서울의 유명한 교회의 목사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국방부 장관이  공군 사관을 졸업하고 참모 총장으로서 있다가 제대후에 무슨사건으로 문제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양 관에서  돌아와서 저의 교회에 공군 사관 학교 졸업하신 분이 있어 조 만형 목사님을 말을할때에  우리 교회의 그 집사님의 말이 조 만형  목사 그분은 공군 참모 총장 되실분이 목사가 되었다는  것은  이해를 못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어째서 그분이 공군 참모 총장되실 뿐이냐고  말을 하니 한국  공군 사관 학교의 한 해 후배이며 학교에  입학 할 때에도 일등이며 졸업을 할 때에도 일등을 하였으며 한국에서 팬턴기  조종사들 중에서는 조종을 제일 많이한 한국에서 제일 조종사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보니 군부대가 있는 조 목사님이 목회 하시던 그곳을 그만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몇 년 후 어느 날  저에게 전화가 와서 부흥 성회를  부탁하셨습니다. 그 곳이  미국의 인디아나주 엔반스빌이 였습니다. 엔반빌에서 부흥 성회를 할 때에 조 만형 목사님께서 설교 하기 바로 전에 복음 성가  중에  " 내가 먼저 화해를 하고 내가 먼저 손 내밀고 하여야 하는데" 하는 복음 성가 중에 가사의 내용이 있습니다. 그 복음 성가를 매일 부르고 또 다시 반복하여 부렸습니다. 아마도 전번에 목회하셨던 군부대 옆의 교회에서 여자들이 무슨 소리를 하던지 내가 겸손한 자세로 먼저 손을 내밀었으면 좋았을 것을 생각하고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에반스 침례교회에는  대부분 국제 결혼 사람들이지만 교회의 대표 되는  안수 집사님들은  한 분은 대학 교수님과 두 분의 의사이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분들과는 비숫한 학벌과 비숫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므로  뜻이 잘 맞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 에반스빌 교회의 담임 목사로 청빈 받아 그 교회에 갔을 때에 아파트와 전임자가 타던 자동차 한대를 주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예배실은 있으나 성경공부 교실이 없어서 추레라 하우스를 알아보니  그 당시  아파트 비를 내는 돈으로  교회의 넓은 빈터에 갔다두면  교실 몇개와 살림 집이 될 것 같아서 집사님들께 의논하고  추레라 큰 것 두개를 아파트 값으로 지불하고 나머지 돈은   매달 주기로 하고  교회의 옆의 뜰에 두었으며 담임 목사님 가정이  사용하는 방이 두개라고 하였습니다. 부흥 사경회가 끝나고 사모님의 이야기가  조 만형 목사님은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집와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나면 교회와 가정 집이 같은 곳이지만 매일 오전 8시에 교회 사무실에 가서 낮 12시가 되면 집에 오시고 점심 식사를 하시고  오후 1시에 다시 교회에 가면 오후 5시에 집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동차의  자동 미숀은 교회 것이므로 손을 대지 못하게 하고 원래 가졌던  차는 스탠다드 미숀이라 여자로서 운전하기에는 힘드는 차이므로 시장을 못간다는 것입니다. 저녁에는 신방을 가고  낮에는 자동 미숀은  교회 차이므로 사적으로 사용 못하게 하여 하루 종일 집에만 있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조 목사님에 대하여 들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월 4일 후퇴때 이북에서 이남으로 피란와서 아버지께서 늘 서울 법대를 공부하고 법관되어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다  서울 대학에 시험을 치기 한 달 전에 공군 사관학교에 실력을 알아 보기 위하여 시험을 한 번 처보라고하여 시험을 친 것이 일등을 하므로 그 당시 한국의 공군사관 학교  교장 선생님이 세번이나 집에 찾아 와서 아버지게 이 사람은 한국 공군에 꼭 필요한 사람이므로 공군 사관 학교에서 공부 하도록  허락하여 달라고 하여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공군 사관에 다니게 되었으며 계속 일등을 하였으며 조종사로서 편턴기 기록 제일 많았으며 편터기 18을 오키나와에 가서 오산 비행장으로 조 목사님이 조종하여 왔습니다. 그 때에 박정희 대통령과 공군 참모 총장과 공군 군수 참모등 많은 분들이 보고 비행기가 좋기는 하지만 값이 너무 비싸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계급은 동기 중에는 제일 빨리 올라갔으며 한국 공군 참모 총장이 되리라고 모두가 생각하였으나 부인의 반대로 대령으로 제대를 하였다고 합니다.  


64. 2000년 2월 10일-13일 경주 제일 침례교회에서(김 이태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2월 9일이 어머님의 추도날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목회를 하면서 어머님과 아버님의 장래식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경주에 계시는 큰 형님댁에서 드리는 어머님의 추도 예배에 참석하고 경주에 있는 제일 침례교회에 부흥 사경회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김 이태 목사님은 대전에서 목회를 하실 때에 경주 제일 침례교회의 B 장로님이 3번이나 찾아오셔서 경주 제일 침례교회에 담임을 부탁하셔서 경주로 오시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김 이태 목사님이 경주에 오시 전에는 경주 제일 침례교회는 목사님들이 그 교회에 가셔서 일년 이상 목회를 하지 못하는 그 교회를 떠나는 교회이였습니다. 한국 침례교회에서는 목사로서 목회할 수 없는 교회로 이름이 난 교회 입니다. 그 이유가 그 교회 B 장로님은 한약방을 하시는 분으로 경주시 의회 의장도 하셨고  경북 도의회 의장도 하셨으며 대전 침신 제 일회 졸업을 하신 분으로 일반적인 목사님들 보다 성경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알고 더 많은 성경을 연구 하시는 분이라 성경을 잘 모르는 목사님들이 목회를 하기가  너무 힘이들어 스스로 그만 두고 다른 곳으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김 목사님께서 와서 보니 B 장로님은 정말로 성경을 많이 알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B 장로님은 국회 의원에 당선 될 수 있지만  국회 의원이 되면 서울에서 있어야 하므로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국회 의원을 출마하지를 않는 다고 하셨습니다. 주일 오후에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성도님이 불국사 가는 길 목에 있는 한식을  잘 한다는 집에서 식사를 하고 그만 제가 베탈이 났습니다.  


65. 2000년 2월14일-17일 까지 수림 장로 교회에서(김 동진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서울 수림 장로교회에서 부흥 사경회를 하게된 동기는  1998년  5월에 중국에 선교를 갔다가 월간 목회 본사에 크르스웨이 공부의 사진을 구입하기 위하여 갔다가 거기서 고 박 종명 목사님(?)을 만나기 위하여 요단 선교회 사무실을(성경 읽기 선교회) 방문하고 그 날 저녁이 마침 수요일이여서 저녁에  박 목사님의 매형님이 장로 교회를 하는 곳에서  요단 선교회의 노숙자들  백여명이 거기에 있다면서 가보자고 하여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 도착하여 보니 큰 방이 있었는데 거기는 노숙자로서 이제 마음을 고쳐 먹고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직장을 가졌으나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장로교회의 목사님이신 수림 교회의 펠로쉽 방에  거쳐한다는 것 입니다. 방에 들어 갔을 때에 한 사람이 박 목사님께 하는 말이  내가 일을 하기 위하여 가기 전에 내복을 빨래하여 빨래줄에 걸어 두었는데 일을 마치고 와서 보니 자기 내복이 없어졌서 누가 도적질 하여 가져 갔서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매형 되는 김 동진 목사님께서 나에게 수요일 저녁 설교를 부탁하여 갑자기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설교를 중간쯤 하였을 때에 어떠한 사람이 강대상 제가 설교하는 장소에 올라 와서 하는 말이 누가 당신에게 설교하라고 하였는가 하면서 저의 성경책을  들고 땅에 내던져 버렸습니다. 그 때 박 종명 목사님께서 그 사람을 대리고 나가고 저는 계속 설교를 하였으며 예배가 끝나고 4층 그 교회의 담임 목사님 방에 갔을 때에  어떠한 사람이 김 동진 목사님께 항의를 하면서 하는 말이 왜 미리 설교자가 다르다고 말하지 아니 하였습니까?  그랬으면  그런 일이 없을 터있은데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마치고 난후에 박 목사님께 4층에서  김 목사님께 말하던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박 목사님 대답이 4층에서 그 사람은 별이 7개요 신 목사님의 성경을 땅에 던진 사람은 별이 3개라  별 7개가진 사람이 별 3개의  가진 성경 책을 던진 사람 훈계를 하면 별 3개는 아무 소리 못한다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별이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형무소를 7곱번 갔다 온 사람은 별 7개이고  3개는 형무소에 3번 갔다 왔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에  2000년  2월 14일-17일까지 부흥회는 경주에서 부흥 성회를 하고 난 후에 하게 되었습니다.  때는  2월이라 추운 편이였습니다. 16일 토요일 점심은 남한 산성에서  음식을 잘하는 집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66. 2000년 6월 18일-23일 한미 침례교회에서(김 승수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2000년 6월 12일-14일까지 오랜도에서 미국에 있는 한인 침례교회의 총회가 있었습니다. 6월 15일에는 올랜도에서 쉬고 16일에 과 17일에는 마이엠이 북쪽인 웨스톤(Weston)에서 쉬었으며 18일부터 23일까지 한미 침례교회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올랜도에서 김 승수 목사님의 차를 타고 저와 아내와 같이 웨스톤까지 갔습니다. 김 승수 목사님 사모님께서 프로리다까지 오셨으니 대서양에서 낚시를 한 바다 고기를 가져 갔으면 좋겠으나 며칠 동안 날씨가 좋치 않았아 바다 고기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아내 생각에 사모님께서 바다 고기가 없다고하여도 나는 가져 갈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 입니다. 성도님 중에 말씀의 은혜를 받으신 한 분이 자기 남편이(미국 사람) 고기  잡아 냉장고에 바다 고기가 있어서 달라스로 돌아 올때에 바다 고기를 한 상자를 가지고 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67. 2000년 10월 20일-22일 베다니 침례교회에서(차 경태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차  경태 목사님께서 목회 하시는 곳이 몰몬교회의(이단) 총 본산이 있는 솔트레이크(Salt Lake City) 입니다. 솔트레이크에 있는 사람 80%가 몰몬 교의 신자라고 합니다.  부흥 성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난 후에 성도들에게 안수기도를 할 때에 저에게 부탁하는 대부분의 말이 우리 아들 혹은 우리 딸이 고등학교까지는 교회를 잘 다니다가 유타주립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동안에 우리 아들이 몰몬교 여자와 사귀며 또 우리 딸이 몰몬교의 남자 아이와 사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결혼까지 하겠다고 합니다.(몰몬교의 결혼은 반드시 몰몬교의 형식을 따르며 몰몬 교를 믿겠다고 서약하여야 결혼을 하게 됩니다.) 부모로서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차 목사님은 이와 같이 어려운 곳에서 목회를 합니다. 또 차 경태 목사님은  그곳에서 목회를 하시며 친 부모님과 처가 집  장모님을 함께 한 집에서 모시고 10년 이상 함께 살아 참으로 요사이 보기 드문 효자 입니다. 소트레이크에서는 미국에서 사용하는 소금은  70%가 생산하는 곳이며  솔트레이크 도시에서 조금만 가면  구리 광산이 굉장히 큰 것이 있는 곳입니다. 솔트레이크는 말 그대로 소금의 호수 입니다. 염분이 18%된다고 하며 눈이 먼  새우가 살고 있으며 눈이 먼 새우는 금붕어의 좋은  밥으로  된다고 합니다.(사해 바다는 소금이 23%로 아무 생물도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68. 2001년 3월 9일-11일 탈하시 침례교회에서(임 종수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탈하시는 프로리다주의 수도(Capital)  입니다.  거기는 한인들이 많이 살지 아니하므로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이 많지 않을 것으로 알고  저는 비행기 회사도  작은 회사 를 선택하였으며 비행기 요금도  값이 헐한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달라스에서 시카코에 갔다가 탈하시로 가려면 거리는 배가 되지만 시골 교회의 경제를 생각하고 시간은 고려 하지않았는 것 같습니다. 시카코에 도착하여 탈하시로 떠날 시간에  연착하여 5시간  늦게 떠난다고 하였습니다. 월례 시간대로 하면 오후 4시경에 도착하기로 되여 있으나 5시간 늦어지면서 처음 부흥 성회를 하는 날 저녁 9시 넘어서 탈하시 공항에 도착하므로 시카코 공항에서 임 종수 목사님께  전화로 5시간 늦어진다는 말을 하면서 첫 날 저녁 성회는 임 목사님이 대신 하시라고 하였습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부흥 성회를 하기로 하였으나 금요일 저녁에는 하지 못하고 대신 토요일 오전 오후 계획한 것 보다 더 많이 부흥 성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특별히 말씀을 듣고 원수 갚겠다는 사람이 이제부터는 복을 빌겠습니다,(벧전3:9)  하는 놀라운 은혜가 있었습니다.(나눔 95번 원수에게 복을 빌라를 보시기 바랍니다. 


69. 2001년 9월6일-9일 침례교 수도 지방회에서(정 영만 목사 회장) 부흥 사경회와 세미나 인도 하였습니다. 

      미국 한인 침례교 수도 지방회란 그 당시 미국의 데라웨어, 메릴랜드, 와신톤 디시, 버지니아 주의 침례교회 연합회를 말합니다. 침례교 수도 지방회 연합 부흥 성회를  제 1회에는 오 관석 목사님께서 강사님이 되셨으며 제 2회는 김 충기 목사님이 강사님이 되셨으며 제 3회는 2001년 9월 27일부터 29일까지  김 장환 목사님께서 강사님이 되어 성회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와신톤 지역 한인 교회 협의회(초 교파)에서  김 홍도 목사님을 강사님으로 모시고 9월 27일부터 29일까지 부흥성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침례교회에서 그 지역 회장단들이 모여 의논하여 9월 6일부터 9일까지 하기로 결정하고  한국의 김 장환 목사님께 연락을  하여보니 김 장환 목사님은 그 때에 유럽에 가시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하여 다시 회장단들이 모여 의논한 결과  제가 대신 강사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장소는 와신톤 한인 침례교회(이 승희 목사)에서  하였습니다. 저녁에  4번, 새벽에 두번,  주일 낮에는 와신톤 한인 침례교회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특별히 금요일 10시부터 12시까지 목회자 세미나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미리 이야기를 하지 않아   금요일에 목회자 세미나가 있다는 말을 듣고 무엇을 할 까 하고 생각도 하여 보았으나 평소에 내가 혼자서 늘 생각하여 오던 것이  다윗에 대한 것이 였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목회자 세미나에는  사도행전 13장 22절의 "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라는 제목으로 왜 하나님께서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하셨을까?  성경에 많은 사람의 이름이 나오지만 성경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만 내 마음에 맞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아무게 목사를 만나 보니 내 마음에 맞다고 하시면 얼마나 좋겠는가.  어떠한 사람들은 다윗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라고 말합니다. 성경에는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다윗의 기도의 사람이다. 성경에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찬양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찬양만 전문 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몇 사람이나 나옵니다. 그러면 다윗만의 독특한 점이 무엇일까.  저는 여러 날 기도하며 묵상을 하는 가운데 다윗만이 독특한 면이 시편 51편 12절에 "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하는  " 자원하는 심령" 이 다른  사람보다 다르다고 생각하여 그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자원한다고 하여 자기 마음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자원 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만(삼상15:22) 자원하는 마음은 그 보다 더 좋은 믿음의 사람이라 생각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할 것은  다윗이 자원하는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항상 그의 마음 속에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 주는 나의 주님이 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시16:2-3)  다윗은 먼저 주님과 관계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므로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게 되었으나(3,000년 전) 그는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주인) 자기는 항상 주님의 종으로 생각 하였습니다.(삼하7장 18-29까지 주라는 말이 36번 나옵니다)  그리고  다윗은 정치를 할 때  "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여"(왕상3:6)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번째는 땅에 있는 성도란  아직 믿음이 부족한 성도들이지만 가장 존귀한(만왕의 아들)  사람으로 알아야 하며  성도들 중에 마음을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목회자는 그들과 기쁨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하 5장에 예루살렘을 도읍으로 정하였습니다. 성경은 예루살렘이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또 더나아 가서 하나님은 예루사렘을 하나님이 택하셨다고 말씀하기도 합니다.(왕상11:13;14:21;왕하 14:27;대하6:6;시147:2) 이 모든 것은 이미 신명기 12장5,11,14,18,21,26절에   모세를 통하여 말씀 하신 것을 다윗이 깨달은 것 같습니다. 사무엘하 6장에 72년 동안(아벡 전투 BC 1075년에서  다윗이 법궤를 옮긴 것은BC 1003년 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관심 하였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다윗이 옮긴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의 말씀을 72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이 잊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것은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매우 중요시 하셨다는 것입니다. 목회는 하는 사람들이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성경) 중요시 하지 아니하면 신앙의 발전이 없습니다.(벧후1:19) 사무엘하 7장 성전을 건축려고 나단 선지자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말하지도 아니한 것을(삼하7:6-7)  다윗이 성전 건축 하겠다고 말을 하니 성전은 아들이 건축할 것이며  다윗이 이런 말을 하였으니 내가 다윗과 그 후손에게 복을 주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역대상에 보면 제사장의 반열과 레위사람의 반열과 문지기와 찬양대와 여러가지를 준비하는 것을 봅니다. 다윗은 마음으로 성전을 사모하는 기도하는 것이 시편에 기록한 것을 봅니다. (27:4) 기도하는 동안에 자원하는 마음이 생긴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윗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자원 하였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왕이 되어 선지자 나단과 갓이 가까이 있었으며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이 항상 다윗 왕 가까이 있었습니다.(신17:18-19) 금요일 세미나 시간에 나이 많으신 그 지역 선배 목사님들이 많이 참석 하셨으며 목사님들이 90명 정도 참석 하셨습니다. 부흥 성회가 끝나고 다음 날 버지니아 있는 미국 국방성 바로 앞에서 9월 10일 점심 식사를하였습니다. 하루만 늦었다면  2001년 9월 11일 뉴욕 쌍둥이 빌딩과 국방성에 태로로 말미암아 달라스에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70. 2001년 9월 13일-16일 은혜 선교 침례교회에서(박 양수 목사)부흥 사경회와 14일-15일  특별 세미나를 하였습니다.  

      은혜 침례교회의 부흥 사경회는 우리 교회에 계셨던 M 집사님께서  그 곳으로 이사를  가셔서 부흥 사경회를 하자는 말씀을 박 목사님께서 허락하셔서 하게 되었으나 뉴욕의 911 바로 이후라 비행기가 달라스에서 네스빌로 가지를 않아서  M 집사님이  자기 차를 달라스까지 운전하여 오셔서 그 차를 타고 아침 일찍히 달라스를 출발하여  테네시 네시빌에 있는 교회까지 12시간 걸려 그곳에 도착을 하였을 때에 오후 8시가 되어 바로 부흥 성회를 시작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M 집사님 손 아래 동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미 이야기한 것으로 알지만 다시 한번 더 손 아래 동서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동서 되시는 사람은 프로리다 올랜드는 많은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므로  그들을 상대로 가짜 가방을 팔다가 경찰에 발견되어 벌금을 내고  처가 집이 있는 달라스로 왔습니다. 동서가 달라스로 왔을 때에  M 집사님은 세탁소를 운영하던 중이라  손 아래 동서에게 세탁소에 와서 배워서 세탁소를 운영 하여보라고 하여 M 집사님이 운영 하시는 세탁소에서 배우고 있었던 어느 날 달라스에서 가까운 포트 워스에 자그만한 세탁소를 판단는 소식을 듣고  거기를 찾아가 보고 판다는 것이 사실인 것을 학인 하고 얼마에 팔 것인가를 알고 계약금도 처음에 얼마를 낸다는 것을 알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전체 세탁소의 값은  5만불($50,000) 이며 계약금은  일만불($10,000)이였습니다. 달라스에는 장인과 장모와 처남과 처형이  두 사람과 처제가 살고 있어서 그 사실을 말하여  동서가 세탁소를 하도록 돈을 모아 일만불을  준비하여  현찰로 포트 워스에 있는 세탁소 주인에게 주었습니다.(영수증은 받지 아니하고 현찰을 주다) 그리고 매일 그 세탁소에 가서 준비를 위하여 주인 부부와 같이 일을 하였습니다. 3주째  되는 어느 날에 세탁소 남자 주인이 M집사님의 동서에게 세탁소를 하려면 계약금부터 내고 하라고하여 3주 전에 일만불을 주었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말을 할 때 세탁소 남자 주인이  나는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세탁소에서 M집사님의 동서는 주었다고 말하고 주인은 받지 아니 였다고 말하여 말 다툼이 계속될 때에 세탁소 남자 주인이 이렇게 남의 세탁소에서 행패를 부리면 경찰에 연락하겠다고 하여  경찰에 연락을 하면  올랜도에서 경찰이 말하기를   한번만 더 잘 못하면 미국에서 추방하겠다는 말이 생각 나서  경찰이 오면 자기는 미국에서 추방 당해게 되므로 그 세탁소를 나와서 한 시간이나 되는 저의 사무실에  그 동서되는 사람이 찾아 왔서 화가 나서 하는 말이 교회의 집사라는 사람이 그렇게 말할 수가 있냐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천천히 말하여 보라고 말하니 위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어느 교회의 부부가 집사가 된다는 말에 영수증을 받지 아니하고 돈을 일 만불을 현찰로 계약금을 3주 전에 주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고 말을 하니  변호사도 말하기를 영수증를 받지 않았으니 방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세탁소 사람을  축복하는 기도를 합시다.(벧전3:9) 하였더니 자기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부인을 불러 오십시요 하였더니 부인을  모시고 다시 왔습니다.  그 소식을 부인에게 말하고  내일 새벽부터 부인과 함께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여 세탁소 주인을 위하여 복을 빌어 주시는 기도 하자고 하였습니다.  "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리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9) 라고 약속하셨으니 그 사람을 위하여 복을 빌면 하나님이 당신과 당신의 남편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새벽 기도하자고 하고 그들의 장래를(미래) 위하여 기도하고 돌려 보냈습니다.  그 다음 날 새벽에 부인하고 같이 참석하셨습니다. 부인은 목사님의 딸로서 믿는 여자요 남자가 되시는 손 아레  동서는 믿지 아니하던사람으로 결혼하고 그저 여자를 따라 교회 다니는사람으로 믿음이 없었습니다.  새벽 기도회에 나와서 여자는 간절히 기도하는 것 같으나 남자는아직도 생각만 하면 분하여  으응하는 소리만 났습니다. 그 다음 새벽에도 또 그 다음 새벽에도 새벽 기도회에 부부가 계속하여 참여하였으나 남자는  으응 소리만 내고 있었기를  한 40여일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테네시 네스빌에서 어떤 여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부인이  여자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여자분의 아주 친한 친구의 이였습니다. 그 친구의 말이 자기 남편이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암으로서 빨리 수술 해야 한 다면서  우리가  병원에서 수술 하고 퇴원할 동안 남편과 함께 세탁소의 경험이 있다고 하므로 대신 며칠 동안만 일을하여 달라기에서 네스빌로 가야 한다고 저에게 말하고 곧 두 부부가 아이들은 친정 부모님께 맡기고 네스빌로 갔습니다. 네스빌에 교회의 목사님에게  제가 전화하여 새로 이사를 갔으니 교회로 인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세탁소에 다녀 오신 목사님의 말씀이 네스빌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세탁소를 하므로 대단히 좋은 곳이라 하였습니다. 3개월 후에 친구의 남편이 암으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여자 혼자서는 세탁소를  할 수 없으므로 달라스에서 간 친구의 두 부부에게 세탁소를 사라고 하였습니다.  세탁소를 살 돈이 없다고 말할 때 그러면 운영하면서 매 달 얼마식 갚으라고하여 세탁소를 받아 3년만에 다 갚고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을 동안에 어떠 미국 사람이 나이 많아 더 할 수 없는 다는 세탁소 11개를 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운영 하고 있는 세탁소를 팔고 세탁소 11개를 인수 하여 손 위의 동서이신 M  집사님에게 세탁소 3개를  운영하라고 하면서 초청하여 M  집사님이 네스빌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 후에 다른 동서에게 또 세탁소 2개를 운영하도록 하여 주고  제가 부흥 사경회를 갔을 때에 네스빌에서 한국 사람으로서 가장 돈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계약금 일만 불을 빼앗기고 그를 위하여 복을 비는 기도를 40일 정도 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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