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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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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차 : 1997년 10월9일-12일까지 어스틴 침례교회에서(김 정주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김 정주 목사님께서 1991년 5월 23일-26일까지 전한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은 내용의 말씀을 전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같은 내용으로 두 번째 전하였습니다.


52 차 : 1997년 11월6일-9일까지 타코마 제일 침례교회에서(문 창선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그 당시  타코마 제일 침례교회는 서북부 지역에서(워싱톤, 오렌곤,몬타나,아다호주)  미국에서 모든 종족을  다 합하여 남침례교회로서  제일 큰 교회 라고 합니다. 1997년 11월에 제가 그 교회에서 부흥 사경회를 할 때에는 3번째 교회 건축을 마치고 헌당 예배를 11월 2일 주일에 드리고 11월 6일부터는 건축 기념 부흥 성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주일 2부 예배에 1,200명 정도 참석할 때였습니다. 타코마 제일 침례 교회는 다른 교회와 다른 점은 금요일과 토요일에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성경공부가  있었습니다. 제가 어느 집사님께 들은 이야기는  그 교회 집사로서 부흥 사경회 동안에 모든 저녁성회와  이틀 동안의 낮 성경공부에 참석을 못하면 일년 동안 집사직을 그만 두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밴쿠버에서 장사하시는 한 분은 자동차 파킹장에 탠트를 치고 거기서 잠을 자면서 참석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타코마는 군 부대가 있는 곳으로 극동 담당 부대로서 육해공군이 다있다고 하였습니다. 교회 성대가에는 미국 사람들이 몇명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드신 남자 집사님 한 사람은 의정부  미군부대에서 자동차 불하 책임자로 있으면서 정 주영씨(현대)와 조 중훈씨(대한 항공)에게 추럭을 불하를 하였다고 하였으며 자동차를 불하를 책임 맡아 하므로 저녁에는 매일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인이 자기 남편이 한국을 떠나지 않고는 술을  끓을 수 없어 미군부대  20년 이상 근무 하여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바로 문 창선 목사님을 만나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며 그 집사님은 그 교회에  오셔서 3번의 교회 건축을 할 때 마다 직장에서 휴가를 내고  건축 책임을 맡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분이 그 교회 집사들 중에  나이가 제일 많아 제직회를 하다가  담임 목사님  의견과 집사님들의 의견(안)이 맞지를 않아 토론이 길어지면 그분이 다른 제직들에게 목사님께서 기도 하시면서 결정하신 것이므로  담임 목사님 의견(안)으로  합시다. 하면 그대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 교회에는 수요예배  때에도 950명 정도 예배에 참석한다고  하셨습니다.  나이 많은 그 집사님 말씀이 한국에 같이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그 당시에는 다 죽고 자기는 미국와서 술을  끓어서 자기만  지금 살았으며  영혼까지  구원받아 너무  감사하 다고 하셨습니다. 저녁에 부흥 성회를 마치고 모텔로  문 창선 목사님의 차를 타고 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문  목사님이 교회의 전기 불을 끄고  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 부사역자가 9명 있다면서 담임 목사가 불을 끄느냐고 말을 하니  문 목사님의 말씀이 부 사역자들이 전기 불을 끈다고하여도   한 두곳은 항상 남아 있더라고 말하셨습니다.


53 차 : 1997년 11월 12-16일까지  한국 기독교 침례회 서울 한성 지방회(강 원희 목사) 연합 부흥 성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타코마 제일 침례교회에서 부흥 성회를 인도하고 다음 날 오레곤주의  포트랜드에서 델타 비행기를 타고 서울 김포 공항으로 갔습니다.  숙소는 그리스찬 하우스(강 원용 목사)에서 하였으며 4일 동안은 서울 한성 지방회 연합 성회를 인도하였으며 주일에는 대광 교회(강 원희 목사) 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금 요일 낮 시간인 오전 10시-12시까지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의 믿음에 대하여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당시 한성 지방회 회원교회는 37교회라고 하며 목사님들이  대부분  32명-35명 정도 참석하였습니다.  참석 하셨던 젊은 목사님 한 분이 저에게 신학교에서 가르치지 아니하는 부활하신 주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위하여 완전한 제사를 드렸다는  말씀에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성회가 다 끝이 나고 월요일 미국으로 돌아오기 바로 전에 강 원희 목사님께서 저에게 일년에 두 번씩 한국에 오십시요.  그 당시 한국의 침례교회가 2,200교회 정도 되는 교회의 성도들 보다 먼저 모든 목사님들이  알야할 내용을 신 목사님이 전했습니다.(저의 저서는 구원의 복음) 기초적인 것이라 목사님들이 기초를 가르치지 아니함으로 교회가 든든히 서저를 못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목회를 하는 사람으로서 일년 두 번씩 올 수가 없다고 하였으며 또 왜 미국에 있는 저에게 그와 같은 말씀 하십니까? 지금은 한국에 있는 침례교회에 신학 박사님도 많고  신학교 교수님들도 많이 있지 아니 합니까?  그 때 강 원희 목사님의 말씀이 신학 박사님이 받지 못했고 신학교  교수님이 받지 못한 것을 이번 5일간 성회하면서 자기는 저에게 그것을 보았다는 것 입니다.  그러면 일 년에 한번씩 오십시요 화요일 도착하여 한번 주일 예배를 한국에서 드리고 다음 토요일에 미국으로 돌아 가도록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장소와 목사님들 모우는 것을 강 목 목사님께서 하시겠다고 하시고 4개월 후에 강 원희 목사님은 그 일을 못하시고 암으로 돌아 가섰습니다. 그리고 그 때 그 기간에 성회에서 오 관석 목사님께서 토요일 축도를 하시고 난 후에 1999년 2월 첫 주  목요일 부터 주일까지 부흥 성회하기로 약속을 하고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김 장환 목사님께서 오전과 오후에 서울 극동 방송국  직원들에게 특별 쎄미나를 하기로 약속 하였으나 저의 몸이 아프르로 두 곳에 다 못하게 되었습니다.

                       

 54 차 :1998년 1월 15일-19일까지 킬린 중앙 침례교회에서(이 동화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주일 낮 예배가 끝나고 점식 식사를 이 동화 목사님의 집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식사 후에 사모님이 저에게 자기는 남편인 이 목사님을 존경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목사 부인이 자기 남편 목사를 존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모님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자기는 목사님의 딸이며 일리노이 대학에 다니고 남편은 그당시 일리노이 대학원 전기과에 다니고 있었으며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알게 되었으며 결혼을 하면 교회에 다니겠다는 대답을 남자로부터 받고 결혼을 하여 남편은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제러럴 전기 회사에중견 간부로 취직을 하여 켄터키 루이스빌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월급도 많이 받아 좋은 집도 사고  평화로운 가정 생활을 하였으며 남편은 아주 열심히 교회를 다니다가 유년 주일 학교 담당  부장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예수님을 더 잘 믿으려면  성경을 더 알아야 하겠다며 신학교에 가서 배우겠다기에 그렇게 하라고 하여 남편이 직장에 다니면서 틈틈히 신학교 공부를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신학교 공부를 마치고 얼마 지나서 목사 안수를 받겠다기에 반대를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목사로서 늘 가난하게 살며 또 어려움을 당하면서 목회하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보아 왔기에 때문에 자기는 절대로 목사의 아내는 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협동 목사가 되겠다는데 왜 반대를 하느냐고 하여  담임 목회는 하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허락하여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얼마 지난 후에 남편이 어느 곳에 목회 자리가 있다면서 목회를 하겠다고 하기에 반대를 하였으나 남편이 완강하게 주장 하므로 너무 반대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  같아 미군 부대가 있는 곳인 텍사스 킬린 중앙침례교회로 담임 목사님으로  오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의 교회에서 주는 월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아이들도 다 자라고 하여 자기는 그 곳 중학교  선생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남편이 목사가 되겠다는 말에 반대한 이유 중에 하나가 자가 남편은 음악을 못하는 음치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월요일부터 수요일 오후까지 수요일 예배 시간에 부를 찬송 2-3가지를 그당시 찬송 반주기의 음을 따라 하루에 2-3시간 연습을 하고  수요일 예배가 끊나고 나면 목요일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주일에 부른 찬송 2-3가지를 또 자동 반주기에 음을 맞추어 연습하여 부르기를 3년 가까이 부르는 것이였습니다.   그러는 중에 특별히 존경 스러운 것은 수요일 예배가 끊나면  주일 예배를 위하여 찬송을 준비하는 동안에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그전에 준비한 찬송은 다 잊어 버리고 다음 주간의 수요예배를 준비하면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일 예배을 위하여 부른 찬송은 다 잊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또 다시 준비하기 위하여 하루에 2-3시간씩 준비하는 것이 3년 지나도록  하루도 쉬지 않고 준비하는 것을 보니 저절러 존경이 간다는 것이 입니다.

   

55 차 : 1998년 3월 19일-22일까지 코퍼스 크리스티 한안 침례교회에서 (이 경수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와싱톤 침례 신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담임 사역하는 이 경수 목사님께서 열심으로 교회를 섬기 셨습니다.


56 차 : 1998년 5월21일-24일까지 클라스빌 침례교회에서(인 영진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인 영진 목사님은 늦게 신학교를 졸업하시고  목회를 시작하신 분으로 한국에서는 미군 부대에서 근무 하셨기 때문에 영어는 잘하시는 편이 셨습니다. 테네스 네스빌에서 자동차로 한시간반 정도 되는 곳이 클락스빌 이며 군 부대가 있는 곳이다. 네스빌은 미국의 컨트리 뮤직의 본 고장이며 매년 컨트리 뮤직 축제를 하는 곳으로 큰 호텔이 중심이 된다고 하였으며 그 호텔에 근무하는 한국 여자분들이 약 100명 정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호텔은 네모로 형성되어 있으며 중간 뜰이 무대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침례교회의 선데이 스쿨이 네시빌에 있습니다. 인 영진 목사님은 그 후에 중국에서 선교사로 주님을 섬기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57 차 : 1998년 8월 27-30일까지 시카코 두라노 침례 교회에서(이 규복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시카코 비행장에 도착하여  이 규복 목사님께서 그교회의 집사님 한분과 같이 공항에 오셨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집사님이 우리 교회는 매우 작은 교회 입니다. 목사님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교인 전부가 22가정이며 20명이 매일 새벽 기도에 참석하며 21명이 십일조 헌금을 하므로 우리 목사님과 사모님은 일을 하지 아니하시고 목회만 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왜 20명이 새벽기도회에 참석 합니까? 물으니 한 가정은 너무 멀어서 못 옵니다. 그러면 왜 21명만 십일조 헌금을 합니까? 하고  물으니  한 가정의 남편이 아직 믿음이 부족하여 십일조를 못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야 ! 이 교회 보통이 아닌 교회이다. 생각을 하였습니다. 교회는 미국 교회를 빌려서 사용하는 교회이였습니다. 새벽 기도회는 오전 5시에 매일하며  기도회에 오는 사람들은  매일 편지를 써서 교회에 들어 올 때에 현관에 준비된 편지함에 다 넣고 기도한 후에 다 떠나 가면 목사님께서 6시경에  그 편지함을 열어서 편지를 한장 한장 들고 하나님 앞에서 읽으면서 기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은 그 날 자기에게 있을 일과 사업과 또 아이들 학교에서 무슨 특별활동 하는 것과  무슨 시험이 있는 것을 다 기록하여 편지 함에 넣는다는 것 입니다.


58 차 : 1998년 9월 17일-20일까지 켄사스 중앙 침례교회에서(임 상순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켄사스 비행장에서 작은 비행기를 타고 정선 시티에 중앙 침례교회가 있는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정선 시티는 군부대 있는 곳으로  대부분 성도들은 군인의 부인들이 었습니다. 임 상순 목사님은 유학을 오셔서 식품 가공학과를 공부하시다가 신학을 하여 목사님이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임 목사님은  재능이 많으신 분이 셨습니다.  임 상순 목사님은 피아노 치시는 사람도 음악을 잘 모르는 사림이 었습니다. 시골에 피아노 치는 사람이 없으므로  자기가 피아노를 공부하여 가르쳐 친다고 하며 부흥 성회 전에 준비 찬송을할 때에 몇 가지 악기를 사용하여 불렀습니다. 그것이 다 자기가 가르쳐 불렀으며 한국에서 새로 나오는 기독교 음악을  컴푸터로 배워서 보급한다고 하였습니다.  부흥 사경회가 끝난 후에 그때 설교한 내용을 테프로 녹음을 하는 데 다른 교단과 다른교회에서너무 많이 주문하여 계속 녹음을 하다가 기계가 고장 나기까지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59 차 : 1998년 10월23일-25일까지 벨링햄 침례교회에서(신 정호 목사)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벨링헴은  시애틀에서 자동차로 북쪽으로 5번길로 1시간 반 정도 가면 만나는  도시이였습니다. 신 정호 목사님께서 예배드리는 미국 교회에서 발견한 이상한 포스타는  애풀 선데이(Apple Sunday) 이였습니다. 미국에서 사과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  시애틀 부근이라  그 미국교회에서 10월 한달  가까이 포스타로 애풀 선데를 광고를 하고 애플 선데이 에는 성도들이 사과를  한 가정에서 한 개식 가져 와서 담임 목사님께서 사과를 쪼개어 봅시다 하면 모든 성도들이 자신이 가져간 사과를 자신 칼로 쪼개면 어떤 사람은쪼개진 사과에 씨가 2개 어떠한 사과에서는 씨가 3개 혹은 4개가 되며 그 가정에선 일 년 동안 자기가 가져가서 쪼갠 사과의 씨만큼 전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씨가 3개면 일년 동안 3사람을 전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거기서 만난 여자 집사님은  복덕방을 하며 남편은 미국 사람으로 가을부터 겨울 동안  곰 사냥을 하며 남편이 친구들과 함께 곰을 잡으면 미국 사람들은 곰의 내장을 다 버리지만 자기는남편에게 내장 중에 실개를 반드시 가져 오게하여 저에게 곰의 실개를 하나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60 차 : 1998년 11월13일-15일까지 베이거스필드 침례교회에서(맹 창호 목사)부흥 사경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엘에이(LA)에서 2시간 30분 정도 북쪽으로 가는  베이커스필드라는 곳에  초청을 받아 부흥 사경회를 하였습니다. 엘에이 비행장에서  오후 2시 30분경에 내려 차동차로  2시간 30분 정도갔을때  시간 상 모텔에 가기 전에 저녁식사를먼저하고 교회에 가서 성회를 인도하고 모텔에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식당에 들어갈 때에  입구에 앉아 있던  식당의 주인 아주머니가  어머 박 정희 닳은 사람이 우리 식당에 오셨네  하였습니다.  저는 머리에 검은 색으로 염색을 할 때 어디를 가나  박 정희  대통령을 닳았다는 말을 들으나  도착하자 마자  박 정희 닳았다는 말은 처음이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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