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공부를 위하여 떠날 때에

by 신인훈 posted Apr 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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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공부를 위하여 떠날 때

 

     1978년 7월 29일에 우리 가족은 주님의 뜻으로 알고 워싱톤 디시 가까운 메릴랜드 하이스빌을 떠나 달라스로 신학교 공부 하기위하여 떠나게 되었습니다. 2016년 2월에 메릴랜드에 계시는 박 권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우리 집으로 걸려 왔습니다. 그동안 잘 있었느냐는 인사와 함께 하시는 말씀이 1978년 7월에 우리가 신학공부를 한다면서 낮 서른 이국 땅에서 영어도 잘 못하는 사람이 멀리 떠날 때에 보내고 난후에 한 푼의 돈도 없이 멀리 신학 공부하기 위하여 떠난 다면서 주님만 의지 하고 온 가족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달라스로 오게 된 이야기는 이미 하였으나 다시 여기서 또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1973년 11월에 미국에 우리 가족 저와 아내와 두 살 된 아들과 함께 3사람이 돈 300불(그 것도 빌려서) 들고 왔습니다. 그 당시 한국 정부에서 이민 가는 사람에게 한 사람 당 100불($100)만 가져 갈 수 있도록 허용 하였던 가난한 나라 이였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교회는 다녔으나 미국에 와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구원받은 후에는 5년 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부름에 처음에는 많이 거절하다가 출애굽기 14장 14절을 읽고 난 후에 결심을 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달라스로 왔습니다. 그 때에 제가 다니던 교회의 건축 헌금 미납된 것이 950불이 남았습니다. 달라스에 가서 한 달에 50불씩 보내자고 제가 말을 할 때에 제 아내가 만일 사정이 여이치 않아 보내지 못하면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어기게 것이 됨으로 떠날 때에 다 지불하고 가자고 하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 때  1,200불 저의 수표장에 있던 것을 아내의 권유에 1,000불을(한화로 현재 1천만원 정도 됨)헌금을 본 교회에 하였습니다. 950불은 건축 헌금이며 50불은 감사 헌금이 었습니다. 저 생각에는 2주간 더 일하던 회사에 다니면 달라스까지 갈 수 있는 여비가 될 것으로 알았으나 1978년 7월 첫 주에 헌금으로 1,000불을 본 교회에 헌금을 하고 다음 날 월요일에 회사에 갔을 때 메니저가 저를 보고 오늘부터 신 군은 회사의 할 일이 없어서 해고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그 일로 잠시 낙심이 되었으나 주님께서 불러 주셨으니 주님께서 책임 져 주실 것으로 믿고 집에 돌아 왔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본 교회에서 1,000불을  주겠다는 것을 거절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나보다 먼저 그 교회에서 신학교를 가신 분에게 20불짜리 영어 성경을 하나 사준 것을 보았기 때문에 20불짜리 영어 성경 한권이면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여전도회에서 850불 있는 것 전부를 주겠다는 것을 거절한 이유는 먼저 신학교에 가신 분에게 돈을 주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거절하고 빈손으로 왔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 5년 동안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시던 박권사님이라 우리를 보낸 후에 그 사정을 잘 아시고 그 분이(그 당시 여자 집사) 많이 울었다는 것입니다. 돈 없이 떠났으나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한(마6:33) 우리에게 하나님은 다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세월이 38년이 지나 갔으나 그 때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박 권사님은 그 후에 제가 하는 풍성한 복음 선교회에 동참하여 선교 헌금도 하셨습니다.

     여기서 제가 아는박권사님을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박 권사님은 대전 사람으로 4 남매의 어머니로서 한국에서 불교를 열심히 다녔으며 우리 보다 2년 먼저 1971년에 미국에 이민을 왔다고 하였습니다. 남편은 베트남에 자동차 기술자로 갔다가 계약 기간을 마치고 한국에 와서 다시 미국에 이민을 온 사람입니다. 박권사님은 학교는 국민 학교 졸업을 한 것이 전부 이였으며 미국에 와서 교회에 다니다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았으며 우리와 같이 메릴랜드에 살 때에는 아파트 청소 하는 회사에서 반장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박권사님은 머리 비상한 사람으로 미국에 와서 영어를 배워 일상 영어도 곧 잘하였습니다. 교회 부근에 집을 구입하여 아침과 저녁에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금식하면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자 이지만 성질이 남자와 같아서 교회의 일이나 가정의 일이나 회사의 일을 잘 처리를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2012년 6월 18일-20일까지 볼티모어에서 미국 한인 침례교회의 총회를 마치고 박 권사님 집에서 저와 아내가 34년 만에 21일-24일까지 4일 동안 같이 지나며 지나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박권사님은 이제는 나이가 80이 넘어 셋째 아들이 사는 동네에 이사를 가서 거기 가까운 교회에서 예배드린다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