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함

by 신인훈 posted May 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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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함

 

     2015년 5월 1일 오늘 새벽에 교회에서 새벽 기도회 때에 담임 목사님이 생명의 삶 5월호(두라노 발행) 순서를 따라 열왕기 상 13장 1절-10절까지 본문으로 전하셨습니다. 여로보암이 북쪽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되어 벧엘에서 자기가 만든 우상에 분향을 할 때에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외쳐 말하기를  다윗의 후손 중에 요시아라는 왕이 태어날(300년 후) 것을 말하고 또  징조로 벧엘의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재가 쏟아질 것을 말할 때에 여호보암 왕이 제단에서 손을 펴며 하나님의 사람을 잡으려 할 그 때에 “ 그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4) 라는 말씀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 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워싱톤에서 달라스에 신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1978년 8월에 왔습니다. 1979년 5월에 제가 다니던 교회가 동쪽으로 멀리 이사를 가므로 서쪽에 있던 사람들이 동쪽으로 따라 가지 아니하고 새로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서쪽에 살았으며 그 당시 제가 알기로는 달라스에서 신학공부 하는 사람은 저 한 사람뿐인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교회가 시작되면서 서쪽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대표들이 저에게 설교를 부탁하였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안 된다고 거절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때 신학교 한 학기만 하였을 때라 어떻게 하여야 할 찌를 몰라 원래 담임 목사 이면서 동쪽으로 이사를 간 목사님께 전화로 이 사람들이 저에게 설교를 부탁하는데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목사님의 대답이 신 집사가 알아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서쪽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또 다시 연락이 와서 설교를 부탁하였습니다. 그 때 다른 교회의 제가 잘 아는 집사님 한 분의 전화가 왔습니다.  그 집사님의  말씀이 새로 시작하려는 그 교회에  달라스에서 각교회에서  호랑이 노릇하던  8 사람이 있다면서 저 보고 그 교회의 설교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제 생각에 토기 100마리  잡은 것보다 호랑이 한마리 잡는 것이 훨신  더 좋은 것 같아서 제가 그 집사님에게  토끼 100마리 잡는 것 보다 호랑이  한 마리를 잡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그 사람들이 다시 연락이  오면 설교를 하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임시로 설교를 하며 담임 목사님을 할 수 있으면 빨리 청빙하기로 하고 그 해 5월 네 째 주일부터 설교를 하였습니다. 새로 시작한 교회에 경제학 박사공부를 하는 Y 라는 집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한국 서울에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한국에서 개신교의 제일 큰 교단의 대학 부 전국 부 회장을 지냈으며 붓글씨도 잘 쓰며 톱을 가지고 예배 시간에 찬송을 부르기기도 하였으며 태권도 2단이며 성령의 9가지 은사를 다 받았다고 본인이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제가 계속하여 설교하는 것이 아주 못 마땅하게 생각을 하였습니다. 자기도 가끔 설교하게 하여 달라고 하였으나 그 교회의 집사님들이 허락 하지를 않았습니다. 1979년 7월 어느 주일 아침에 그 교회의 중심이 되는 H 집사님이 저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 오늘 설교 시간에 Y 집사가 강대상에 올라가서 신 집사님의 멱살을 잡아 내리겠다고 말하므로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때 우리 한국 사람들은 미국 교회를 사용하므로 오후 1시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제가 H 집사님의 전화를 받고 생각나는 성경 구절이 바로 오늘 아침에 담임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신 그 말씀입니다.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 만약에 Y 집사님이 제가 설교하는 강대상에서 저의 멱살을 잡아끌어 내리려고 하면 그 손이 말라 거두지 못할 것이다. 하는 믿음이 저에게 와서 그대로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였으나 멱살을 잡으려 올라오지는 않았습니다.

      담임 목사님을 청빙하기 위하여 7명의 집사님을 청빙 위원으로 세웠습니다. 목사님을 청빙하려고 할 때 합동 측 집사들은 합동 측 목사님을 청빙하자고 하며 통합 측 집사님들은 통합 측 목사님을 청빙하자 고하여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1979년 9월 어느 날 토요일에도 청빙 위원들의 회의가 교회의 어느 방에서 있었습니다. 그 날도 합동 측과 통합 측 양쪽의 의견이 서로 양보를 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Y 집사님이 뜨거운 커피를 다투던 상대 쪽의 집사님의 얼굴에 쏟으면서 멱살을 잡고 얼굴을 때렸습니다. 다른 집사님들은 그것을 보고 다 그만 방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거피를 덮어쓴 집사님도 나가 버렸습니다. 방에는 저와 Y집사님과 둘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 때 Y 집사님을 향하야 제가 소리치기를 교회를 오래 다녔으며 각 가지 은사를 받았다는 집사가 하는 행동이 이것 밖에 안 되느냐며 야단을 치면서 방바닥에 끓어 앉아 하나님께 회개하라고 하였습니다. 끓어 앉기는 하였으나 너무 흥분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수가 없으니 자기를 위하여 대신 제가 회개 기도를 하나님께 하여 다라고 하여 제가 대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다음 날 주일에 제가 설교를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하면서 옛 사람이 반드시 죽고 내 속에 그리스도가 살아야 한다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났을 때 Y 집사님이 저에게 와서 하는 말이 어제 저녁에 내가 잘 못하였다고 오늘 설교에 나를 치는 설교를 왜 하느냐고 하였습니다. 나는 집사님을 치는 설교를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나는 설교를 하기 10일 전에 다음 주에 설교할 성경 구절과 제목을 주보하는  사람에게 전하여 주므로 전번 주일에 이미 성경 구절과 제목이 나갔습니다.  내가 10일 후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아는 사람이라면 신학 공부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그 후에 Y 집사님은 경제학 박사를 받아 지금은 한국의 서울 어느 대학 교수님으로 계시며 미국에 오시면 저에게 전화를 하며 제가 한국에 가면 만나자고 하는 관계가 아주 좋은 편이 되었습니다.